오늘날 경제불황은 정책입안자들의 골칫거리이다. 당연히 그들은 불황을 실업, 빈곤, 사회 불안과 관련짓기 때문이다. 역이자 시스템이 어떻게 경제불황 속에서도 돈의 순환을 가능하게 하는지, 그럼으로써 부의 양극하와 순환 디플레이션을 피하는지 살펴보았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경제의 역성장을 말하면 놀란다. 역성장이라고 하면 사회가 더 가난해지고 공익을 위한 상품과 서비스 규모가 줄어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성장으로 부가 감소할 일도 상품과 서비스의 이용 기회가 감소할 일도 없다. 지금의 상품과 서비스는 돈으로 교환되는 것일 뿐이다.
1. 경제불황의 의미
불황이라는 말이 부정적 의미로 통하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우리 삶의 질을 희생하자는 말이 결코 아니다. 단지 돈의 역할을 줄이자는 것이다. 훗날 다양한 나눔의 방식이 자리 잡게 되면 경제성장도 지금과 다른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남을 위해 내 이익을 포기하는 더 이타적이고 더 희생적인 사람이 되고자 애쓸 필요도 없을 것이다. 지금처럼 돈이 곧 자기 이익이라는 등식에 얽매여 살 필요도 없을 것이다. 어떻게 화폐 영역의 축소를 통해 우리 모두 풍요로워질 수 있을까.
이미 지금도 얼마 안 되는 돈으로 돌아가는 거대 소프트웨어 산업이 존재한다. 지금 이 글은 오픈오피스로 작성하고 있는데 한 프로그래머 모임에서 무보수로 제작한 이 소프트웨어 패키지는 자발적 기부금을 내고 이용 가능하다. 무보수라고 하지만 그 프로그래머들은 동료들의 존경, 즉 일종의 소셜화폐로 보수를 받는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행위가 자연스럽게 공동체 구성원들의 존경과 감사를 이끌어내는 선물경제에 속한다고 말하고 싶다. 어느 쪽이든 이런 식의 생산활동은 GDP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따라서 축소되는 경제 속에 이런 식의 생산은 더 확대되고 개선되는 상황이 가능하다. 이런 생산이 늘어날수록 돈은 덜 필요해질 것이다. 돈이 덜 필요할수록 여가는 늘어날 것이다. 여가가 늘어날수록 선물경제에 기여할 여유는 많아질 것이다.
2. 한계생산비란 무엇일까
현재 많은 범주의 상품들이 사실상 한계생산비가 들지 않는다. 소프트웨어, 음악, 영화 같은 디지털 상품은 거의 다 그렇다고 볼 수 있다. 최초 단위의 생산에는 상당한 비용이 들지도 모르지만, 그 뒤로 추가되는 단위당 생산비는 사실상 들지 않는다. 따라서 저작권 보호, 디지털 저작권 관리 등 인위적 결핍이 만들어져 왔다. 디지털 콘텐츠의 생산자가 보상받는 유일한 방법이 콘텐츠의 혜택을 보다 더 적은 사람들만 받게 하는 것이라니 불합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누구나 현존하는 모든 영화, 모든 노래, 모든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접할 수 있고 생산자는 지금과 같은 비용으로 그 모든 것을 생산할 수 있다. 비희소 상품이 희소 통화로 지불되어서는 안 된다. 실제로 그런 상품의 생산자들 다수가 인위적 결핍 유지를 포기하고 자발적 지불, 광고 판매, 기술지원이나 교육, 음악의 경우 라이브공연 등을 통해 돈을 벌고자 한다. 시간, 주의력, 공연 장소 등은 모두 희소자원이라서 화폐 영역에 훨씬 쉽게 부합하지만 그럼에도 최종 결과는 경제의 역성장일 것이다.
디지털 상품은 보다 일반적인 현상의 극단적 사례일 뿐이다. 다른 많은 상품들도 한계생산비 제로에 가까워지는 추세이다. 의약품 대부분의 실제 한계생산비는 제로에 가까워지는 추세이다. 의약품 대부분의 실제 한계생산비는 단위당 몇 세트에 불과하다. 나사 같은 대규모 양산품도 돈과 노동력 면에서만이 아니라 가끔은 에너지 투입 면에서도 옛날비용보다 비용이 적게 든다. 이는 오랜 시간 축적된 혁신의 결과이며 인간이라면 누구나 똑같이 혜택을 누릴 가치가 있는 우리의 신성한 유산이기도 하다.
3. 경제 역성장이 필요한 분야
신성한 경제로의 진화는 전반적인 문명의 전환과 함께 이루어진다. 의약, 교육, 농업, 정부, 과학 등 우리 문화의 모든 제도에서 유사한 변화들이 진행되고 있다. 각 분야의 변화는 나머지 분야의 변화를 촉진한다. 자연의학으로의 전환이 가져온 경제적 효과도 마찬가지다. 한두 세기 전만 해도 돈을 내고 치료를 받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흔한 병의 경우는 할머니와 이웃들이 돌봐주었고 전통치료사나 약초치료사 등의 비공식적 네트워크를 통해 치료받을 수 있었다. 약초에 관한 지식이 널리 보급된 데다 보통은 공짜로 약초를 쓸 수 있었다. 천연 의약품이 완전히 전문화된다 해도 그 잠재적 수익은 첨단 의약품의 수익에 훨씬 못 미칠 것이다. 복잡한 기술을 이용한 첨단 의약품 생산에 비해 천연 의약품은 값싸게 생산할 수 있다. 약효가 뛰어난 많은 약초들이 흔히 볼 수 있는 잡초류이기 때문이다. 천연 의약품, 동종요법, 그 밖에 지금 부상하는 온갖 심신요법들로의 전환은 경제적으로는 역성장을 가져오겠지만 우리 삶의 질은 조금도 낮아지지 않을 것이다.
경제 역성장이 필요한 또 다른 분야로 건축과 도시설계 분야가 있다. 지난 두 세대 동안 팽창해 온 교외 지역은 우리를 공동체, 자연, 공간으로부터 단절시켰을 뿐 아니라 엄청난 자원 소비에 기여해 왔다. 하지만 이제 설계자와 건축가들은 고밀도 도시설계, 소규모 주택, 대중교통 친화적 설계, 운전 시간을 줄여주는 복합용도 개발의 장점을 재발견하고 있다. 이 모든 변화가 경제 수축으로 이어진다. 도로, 휘발유, 목재 같은 상품이 덜 필요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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