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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공평한 부의 분배

by moneyfreedom 2023. 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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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이자 화폐론의 선구자는 독일계 아르헨티나 사업가인 실비오 게젤이었다. 그는 경제성장이 바람직한 일이라는 데 누구도 의문을 품지 않았던 시대에 살았고, 뛰어난 선지자이기는 했지만 지구와 기술이 무한한 경제성장을 수용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그의 주된 관심사는 당대의 불공평한 부의 분배를 바로잡는 일이었다. 그는 전례 없는 풍요 속에서 전례 없는 빈곤을 겪는 이유가 돈을 쥔 사람들이 막대한 이득을 부당하게 취하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돈을 보유한 사람은 화폐인 동시에 비축 가능한 물품을 보유한 셈이었다. 다른 물품은 금이나 화폐와 같은 방식으로 비축할 수 없다. 그것들은 썩고 녹슬고, 도둑 맞거나 구식이 되고, 저장 및 운송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1. 부의 양극화

금은 물건의 특성과 어울리지 않는다. 금과 지푸라기, 금과 휘발유, 금과 비료, 금과 벽돌, 금과 철, 금과 가죽을 비교해 보자. 터무니없는 망상이나 환각, 가치라는 신조만이 그 간극을 메울 수 있다. 지푸라기, 휘발유, 비료 등 일반적인 물품을 안심하고 교환하려면 누구나 돈으로 깃든 물건으로 갖든 상관이 없어야 하며, 그러려면 돈이 우리가 만든 것들에 내재하는 온갖 결함을 지녀야만 한다. 이 점은 분명하다. 물건들이 썩고 퇴락하고 고장 나고 녹슬듯이 돈도 그렇게 불편하고 손해 나는 것이어야만 사람들이 안심하고 돈을 빠르고 싸게 교환할 것이다.

 

그런 돈을 물건보다 더 선호할 사람은 절대 없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 신문처럼 쓸모 없어지는 돈, 감자처럼 썩는 돈, 쇠처럼 녹스는 돈, 에테르처럼 증발하는 돈만이 감자, 신문, 쇠, 에테르의 교환수단이 될 수 있다. 판매자나 구매자나 그런 돈을 물건보다 더 선호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돈을 받고 물건을 내주는 것은 돈을 모아 이득을 보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교환수단으로써 돈이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도 게젤의 시대처럼 사람들은 물건보다 돈을 더 선호한다. 돈을 가진 사람들이 이자를 요구할 수 있는 것은 교환수단을 쥐고 내놓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실물자본을 가진 사람들에 비해 특권을 누린다. 그래서 누구나 돈을 가진 사람들에게 사실상의 조공 비용을 바치게 되고, 결국 부의 양극화가 점점 심화될 수밖에 없다.

 

2. 단순한 교환수단으로써의 돈

게젤이 결국 말하려는 것은 단순한 교환수단으로 돈을 지불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사실이다. 게젤은 사람들이 서로 교환하려는 단순한 욕구만으로 충분하다고 믿었다. 우리가 서로 필요로 하는 것을 주고받을 수 있다면 왜 그것을 교환하는 수단으로 돈을 지불해야 할까? 선물을 주고받을 특권이 있는데 왜 돈을 지불해야 할까? 이런 점에서 게젤의 화폐가 공짜화폐라 불리는 지도 모른다. 게젤은 교환수단으로써의 화폐와 가치저장수단으로써의 화폐를 분리시키는 도구로 소멸화폐를 옹호했다. 실물 자본보다 돈을 선호하는 현상이 사라지면 교환할 물건은 넘치는데 그것을 교환할 돈이 부족할 때 발생하는 인위적 결핍과 경제불황도 사라질 것이라고 게젤은 생각했다.

 

그의 제안은 돈이 강제로 순환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결핍이 점점 심해져서 실질자본수익률이 이자율보다 높아질 때까지 돈을 쥐고 내놓지 않게 만드는 동기를 없애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게젤의 화폐가 자유화폐라 불리는 이유이다. 부자들의 통제하에 고여 있던 돈이 풀려나 자유롭게 흐를 것이기 때문이다. 게젤은 이자가 붙는 돈의 속성이 번영의 걸림돌이라고 보았다. 돈을 가진 사람들은 물자가 넘쳐서 자본투자수익률이 최소이자율보다 낮아지기 무섭게 투자를 거둬들인다. 거래를 수행해야 할 돈이 사라지고 익숙한 과잉생산의 위기가 닥치지만 대다수는 물자 부족에 시달리는 역설적인 상황이 이어진다.

 

3. 과거의 화폐시스템

1906년의 화폐시스템은 지금과 상당히 달랐다. 대부분의 화폐가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귀금속을 기반으로 했으며, 지금처럼 본원통화로부터 엄청난 규모로 신용이 확대되는 일도 없었다. 게젤은 신용을 돈의 대체수단, 즉 현금 없이도 거래가 가능한 사업의 한 방법으로 여겼지만 오늘날의 신용은 돈과 다를 바 없다. 현재 통용되는 경제이론에서는 신용이 돈으로 쓰이는 것을 긍정적인 발전으로 본다. 교환수단의 수요에 반응해 통화공급이 유기적으로 증가 또는 감소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자가 붙는 신용은 화폐경제의 성장에 반응할 뿐 아니라 성장을 강요하기도 한다. 게다가 지금 같은 형태의 신용은 게젤 시대의 돈 못지않게 결핍을 겪기도 쉽다.

 

비록 20세기 후반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게젤의 사상은 1920~1930년대에 광범위한 추종자들을 만들어냈고, 어빙 피셔와 존 메이너드 케인스 같은 저명한 경제학자들에게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피셔는 게젤의 사상을 미국에 활발히 알렸고, 케인스는 게젤을 지나치게 외면당한 예언자라 부르고 그의 저작을 지극히 독창적이라 평하며 그 답지 않은 찬사를 보냈다. 게젤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혼란기에 바이에른 공화국의 재무장관으로 임명되기도 했으나 이 불운한 공화국은 채 1년도 가지 못했다. 집단이나 개인이나 위기 없이 진정한 변화를 이루기는 힘든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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