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금융의 온갖 기술적 세부사항을 논하는 가운데서도 돈의 진정한 목적을 놓치면 안 된다. 선물과 필요를 서로 연결해 주는 역할, 인간의 창의성을 조율해 공동의 목표를 이루게 만드는 마법 같은 부적의 역할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을. 수많은 파멸과 병폐의 명백한 원인으로 혐오해 왔던 돈이 내 가슴이 가능하다고 말하는 더 아름다운 세상의 핵심 요소라고 말하려니 야릇한 기분이 든다. 하지만 돈에 대한 우리의 반감은 과거의 돈에 대한 것이지 미래의 돈에 대한 것이 아니다. 생태적 경제 속에서 신성한 것들을 기반으로 하는 역이자 화폐는 고리대금 시대의 제도들을 완전히 뒤집고 인간 경험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혁명적인 것이다. 외면에서부터 내면까지, 경제에서부터 정신까지 모든 수준을 아우르는 변혁이다.
1. 돈의 영역
화폐 창출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는 원리, 즉 '돈을 불릴 사람에게 돈이 돌아가게 한다'라는 원리는 결국 상품과 서비스 영역을 확대하라는 말이나 다름없다. 우리 사회의 에너지는 돈과 재산의 영역, 인간의 영역, 소유의 영역을 확대하는 데 쓰이고 있다. 자연의 지배자를 향한 인류의 도약기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자율을 마이너스로 낮추면 자본 수익률 제로 혹은 마이너스인 투자가 가능해진다. 이런 말이 직관에 반하는 것처럼 들리고 투자 개념 자체와 모순돼 보일 수 있다. 이 말이 반직관적으로 들린다면 그것은 우리의 직관이 수 세기 동안 성장 문화에 길들여져서 돈이 다른 기능을 할 수도 있다는 생각, 수익에 의존하지 않는 비즈니스 모델이 가능하다는 생각을 거의 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만약 대통령이 외계인에게 이런 제안을 받았다고 생각해 보자. "지속 가능한 세계 총생산이 연간 10조 달러인 것으로 아는데 제안 하나 할까요? 지구 전체를 6백조 달러로 쳐드리지요, 실은 지구의 모든 자원을 채취하고 표토를 파괴하고 대양을 오염시키고 숲을 사막화하고 지구를 핵폐기장으로 사용할 계획입니다. 하지만 6백조 달러라는 돈을 생각해 보세요, 당신들 모두 부자가 될 겁니다." 물론 당신은 거절하겠지만,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을 보면 사실상 그런 제안에 응한 것이라 다름없다. 우리는 날마다 무수한 작은 선택들을 통해 지구를 팔아넘기고 있는 중이다.
2. 지구의 미래 가치와 지속가능성
너무 오래 유행어로 사용된 '지속가능성'이라는 말은 이제 진부한 표현이 돼버렸다. 그러나 누구나 동의하는 말이 되었음에도 지속가능성은 수익에 대항해 승산 없는 싸움을 해왔다. 숲은 죽어가고 호수는 말라가고 사막은 확산되고 열대우림은 계속 개벌되고 있다. 지난 40년간 환경주의자들이 최선을 다했지만 그 속도는 느려지는 법이 거의 없었다. 그들이 언제 어디서나 맞서 싸워야 했던 대상은 장기적인 피해를 감수해 가며 단기적 수익을 추구하는 돈의 위력이었다. 자본의 근시안은 미래의 현금 흐름을 할인하게 만드는 이자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다.
역이자율이 적용된다면 지금과는 정반대의 사고가 우세할 것이다. 당신이 세계 대통령이라고 다시 가정해 보면 이번에는 외계인의 제안에 혹하지 않을 것이다. 역이자율하에서는 아무리 많은 돈으로도 지구를 살 수 없다. 미래의 돈이 같은 액수의 현재의 돈보다 사실상 더 가치 있는 데다가, 지구의 미래 가치는 시간이 지날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신은 외계인에게 얼마를 준다 해도 지구를 팔지 않겠다고 할 것이다. 이 말은 우리 문명의 생태적 기반과 생명 그 자체에 가격을 매기려는 경제에 대해 무한한 가치를 지닌 것을 유한한 액수의 돈으로 바꾸는 모든 시도에 대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말이 아닐까. 이제 세상의 아름다움, 생명, 건강,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팔아치우는 일을 그만둘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3. 소득과 소비의 관계
지구를 팔아치운다는 예가 비현실적이며 경제적 반론도 가능하다는 것을 안다. 향후 30년, 50년, 백 년 동안 아직 존재하지 않는 그다음 일곱 번째 세대까지 혜택을 가져다줄 행동이 경제적인 행동이 될 것이다. 지금은 이상주의자나 그렇게 행동하겠지만 말이다. 역이자와 소멸 화폐가 시행된다면 우리의 이상과 경제적 이익 간의 갈등도 사라질 것이다. 이번에는 현실적인 예로 돌아와 이자가 소비를 미루고 만족을 지연시키는 데 대한 일종의 보상이라는 견해를 살펴보자.
다시 말해 지금 당장 가진 돈을 모두 써버림으로써 효용을 극대화하고 싶지만 이자 덕분에 돈을 더 불릴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것이 바로 경제학의 시간선호설이다. 사람들이 나중보다 지금 당장 소비하고 싶어 한다는 시간선호는 1930년대에 폴새뮤얼슨이 개발해 오늘날 대다수 주류 경제이론의 바탕이 된 할인된 효용 모델의 결정적 요소이며, 케인스에 대한 많은 현대적 반론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게다가 체선료 기반 화폐를 다룬 수리경제학 논문에서도 그런 화폐가 공공복리에 해가 된다는 허울 좋은 주장을 펼치는 데 있어서 시간선호설이 핵심 변수였다.
케인스는 시간선호를 완전히 무시하지는 않았지만 소득이 오를수록 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더 낮아지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우리가 굶어 죽게 생겼다면 돈을 버는 족족 음식을 사는 데 쓸 것이다. 절박한 욕구를 다 채우고도 남는 돈이 있다면 그중 일부를 책이나 오락 활동에 쓸 것이다. 하지만 소득이 증가할수록 소비의 절박성은 줄어든다. 따라서 케인스는 소비를 미루게 하는 동기 없이도 사람들에게는 저축하려는 타고난 성향이 있다고 믿었으며, 이런 저축 성향이 부의 집중을 가져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가 낮은 이자율, 심지어 역이자율을 지지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