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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발전과 결핍

by moneyfreedom 2023. 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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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결핍

기술의 역사는 상당 부분 노동력 절감 장치의 역사라고 볼 수 있다. 디젤 굴착기는 5백 명이 삽으로 할 일을 해냈고, 불도저는 5백 명의 벌목꾼이 도끼로 할 일을 해냈으며, 컴퓨터는 5백 명의 회계원들이 펜과 종이로 할 일을 해냈다. 이렇게 수 세기 동안 기술발전이 이어져왔지만 왜 우리는 옛날과 다름없이 일에 치여 살까? 지구상의 대다수 사람들은 왜 아직도 매일같이 결핍을 느끼며 살까? 수 세기 동안 미래 학자들이 예언하던 여가의 시대는 왜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을까? 그 이유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우리가 일을 줄이기보다 생산을 늘리는 쪽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런 선택 앞에서 우리는 매번 속수무책이었다.

 

1. 실업이라 불리는 여가

지금과 같은 시스템에서는 모종의 부의 재분배 없이 여가를 늘리기가 불가능하다. 모든 노동자들의 생산성을 두 배로 높여주는 마법 같은 기술이 갑자기 등장하면 어떻게 될까? 그러면 절반의 노동력으로 같은 양의 상품 생산이 가능해진다. 수요가 더 늘어나지 않는다면 노동력의 절반이 남아돌게 되고, 회사는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그 절반을 해고하거나 비상근직으로 돌리거나 급여를 줄여야만 한다. 노동자들이 창출하는 수익 이상의 급여를 주려는 고용주는 없으므로, 총급여액은 절반으로 감소할 것이다. 해고된 노동자들은 상품을 구매할 능력을 잃게 된다. 상품 가격이 50퍼센트까지 떨어진다 해도 마찬가지다. 결국 더 적은 노동력으로 더 많은 상품을 생산함에도 불구하고 그 상품을 살 사람이 돈이 없어 못 사는 결과로 이어진다. 여가가 늘어나는 것만은 분명하다. 실업이라 불리는 여가 말이다. 그 결과는 급속한 부의 집중, 디플레이션, 파산 등의 재앙이다.

 

잇따른 사회경제적 재앙을 피할 수 있는 길은 부의 재분배 아니면 성장뿐이다. 전자를 위해서는 일자리가 있는 사람들의 돈을 가져다 없는 사람들에게 나눠주거나 회사들이 남아도는 인력을 계속 유지하도록 지원하거나, 일자리가 있든 없든 상관없이 모두에게 사회임금을 지급하면 된다. 이런 재분배정책은 돈을 가진 사람들의 상대적 부와 권력을 축소시킨다. 또 다른 해결책은 일자리를 잃는 사람이 없도록 수요를 두 배로 늘리는 것이다.

 

2. 부의 수요를 늘리는 방법

일반적으로 부자들은 지배적 위치에 있으며 부의 재분배를 원하지 않기에 생산과잉과 실업 문제의 전통적 해결책은 어떻게 해서든 경제성장을 지속하는 것이었다. 즉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수요를 늘려나가는 것이며, 수출도 그중 한 가지 방법이다. 물론 지구 전체로 보면 해결책이 될 수 없지만 말이다. 수요를 늘리는 또 다른 방법은 비화폐적 영역을 화폐 화하는 것, 즉 한때 공짜였던 것을 돈을 주고 사게 만드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전쟁과 낭비를 통해 과잉생산을 해결할 수도 있다. 이런 조치들에 따르면 우리는 자연적 수요가 모두 충족된 뒤에도 힘들게 일해야 한다.

 

성장 이데올로기와 도약의 이야기는 자연적 수요가 결코 충족되지 않으며 끝없이 증가할 수 있다고 말한다. 새로운 시장, 새로운 필요, 새로운 욕망이 끝없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 말했듯이 충족될 줄 모르는 욕망은 돈에 대한 욕망뿐이다. 무한히 증가하는 필요와 무한히 증가하는 수요라는 가정 그리고 이를 정당화하는 경제 논리는 지금의 광기를 부채질하고 있다. 효율성을 높여서 무엇을 할 것인지, 즉 일을 줄일 것인지 소비를 늘릴 것인지 선택할 기회는 늘 있었지만, 우리는 성장 의존적 화폐 시스템에 떠밀려 계속 후자를 선택했다. 우리는 일을 줄여서 기존의 필요를 더 쉽게 채우기보다 끊임없이 새로운 필요를 만들어내거나 필요를 선물의 영역에서 돈의 영역으로 전환하거나, 유한한 것으로 무한한 필요를 채우고자 했다. 그러면서 우리 몸과 마음의 재능을 끊임없이 계발해 왔다.

 

3. 경제성장의 유지

자연, 문화, 정신, 인간성이 큰 대가를 치르기는 했지만 그런 우리의 재능에 정당한 정당한 목적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제 자연과 문화적 공유자원이 고갈됨에 따라 일을 줄일지 소비를 늘릴지의 선택의 맥락도 변하고 있다. 도약의 시대가 끝나가는 지금 우리는 지구와의 새로운 관계 속에서 이제껏 계발해 온 재능을 진정한 목적에 사용하고자 한다. 이제 성장의 시대는 끝났다. 우리는 더 효율적인 생산기술을 통해 일을 덜 할 수도 있고, 여전히 힘들게 일하면서 더 많이 생산할 수도 있지만, 지금의 경제 시스템은 후자를 택하도록 강요하고 그 선택을 구현한다. 지금 우리는 경기부양과 관련해 케인스 식 경제를 말하지만 케인스는 결코 경기부양을 영구적 해결책으로 보지 않았다. 우리 사회는 군비를 늘리고 고속도로를 건설하고 자원 채굴, 건설, 소비, 제국주의를 보조하면서 70년 동안 인위적 경기부양을 해왔다.

 

경제성장을 유지하고 자본의 한계효율이 이자율을 상회하도록 애쓰면서 우리의 필요와 상관없이 생산을 점점 더 늘려야만 하는 덫에 스스로를 가두었다. 이를 정당화하는 경제이론은 우리의 욕구가 앞으로도 계속 증가할 것이고 따라서 생산을 점점 더 늘려야 한다고 말한다. 한 산업에서 더 늘리는 것이 불가능하면 다른 산업으로 이어가야 한다고 말이다. 이 과정은 자연, 사회, 문화, 영적 자본의 한 영역이 고갈되면 다른 영역으로 옮겨가는 과정이나 다름없다. 도약의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던 시대에 살았던 케인스는 이를 명시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직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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