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기름이 유출된 바다에서 죽어가는 바다거북의 알을 구하기보다 필요도 없는 집을 계속 지어대는 정신 나간 짓을 하게 만드는 동기는 무엇일까? 결국 공유자원의 파괴는 돈이 되고, 그 공유자원을 회복하는 일은 이타주의의 문제라는 얘기다. 비용의 내부화는 돈과 인간 활동의 흐름이 소비가 아닌 신성함을 향하도록 바꿀 것이다. 역이자 화폐는 돈이 불어나지 않는 곳에도 투자가 이루어지고 미래 가치가 할인되지 않는 세상을 만들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할지도 모른다. 이 세계의 치유에 필요한 일 중에는 그 본질상 비경제적인 일이 있기 때문이다.
1. 비경제적인 일을 하는 방법
그렇다면 문제는 사람들이 경제적 수익이 나지 않는 중요한 일을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드는 것이다. 그 방법은 부의 재분배와 마찬가지로 기본적으로 두 가지다. 하나는 오늘날 경기부양 수표, 세액공제, 복지 보조금 등의 제한적 형태로 존재하는 사회배당금이다. 사회배당금은 사람이 고용되지 않는 일, 팔릴 만한 것을 만들어내지 않는 일을 할 수 있는 경제적 자유를 준다. 비경제적인 일을 장려하는 두 번째 방법은 우리가 가치 있게 여기는 아름답고 필요한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정부엣 보수를 지급하는 것이다.
뉴딜정책 때 수많은 실업자들이 경제적 수익을 창출할 인프라 건설뿐 아니라 민속음악의 수집과 보존, 휴양지역 조성 같은 일에 고용된 것은 그 전조였다. 확대해 보면 국가사회주의적 비전과도 사실상 다르지 않다. 그러나 계획경제는 사람들의 중요한 요구를 간과하고 전체주의적 권력 남용으로 이어져 개개인과 풀뿌리 조직들의 창조적 능력을 이끌어내지 못할 때가 많다. 사회배당금의 경우는 사람들이 경제적 요구에 구속받지 않고 자연스럽게 좋은 일, 필요한 일을 선택하게 만든다. 구속 없는 자유로운 선택, 구속받지 않는 욕망의 자연스러운 결과물은 어떤 일이 신성한 일인지 확인시켜 줄 것이다.
2. 인간의 나태함을 위한 결핍
인간 본성과 사회 운영방식에 관한 두 가지 대립적 시각에 따라 결과는 엇갈릴 수도 있다. 한쪽은 경제적 요구에서 자유로운 사람들이 아름다운 일을 한다고 말하고, 다른 한쪽은 사람들의 경제적 요구를 이용해 아름다운 일을 하게 만들라고 말한다. 전자는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창조 욕구와 자발적인 조직 능력을 믿고, 후자는 노동의 배치를 정책입안자들에게 맡긴다. 사회배당금 등의 지원 혜택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일을 할 동기가 없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어떤 압력 없이는 아무 일도 하지 않을 것이다. 일을 하게 만들 유인책이 필요하다고 말이다. 일하지 않고도 기본적인 필요가 충족된다면 왜 굳이 일을 하겠느냐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는 인간의 선척적인 나태함을 바로잡아주는 결핍, 심지어 인위적 결핍조차도 절대선이다. 이런 논리는 자신에 대한 통제와 지배,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논리와 통한다. 그러나 생산적인 일을 전혀 하기 싫어하는 것이 정말 인간의 본성일까? 정말 우리에게는 억지로 일을 하게 만드는 보상과 나태함이 대한 불이익이 필요할까? 나누지 않고 가지려고만 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가치 있다고 믿는 일과 다른 일을 하면서 만족을 느끼지 못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낸 경험 말이다. 내가 진짜로 관심 있는 일을 해본 적이 있었나? 돈을 받기 때문에 사는 삶 말고 진짜 내 삶은 언제 살아보나?
3. 결핍을 유도하는 돈의 본질
인간에게는 나누고자 하는 자연스러운 욕망이 있다. 우리 모두는 감사의 마음, 받았음을 알고 되돌려주고 싶어 하는 마음을 타고났다. 그러나 지금의 경제는 내키지 않는 사람들에게 유인책을 써서라도 나누게 만들기는커녕, 우리의 타고난 관대함을 부정하게 만들고 누구에게도 도움 되지 않는 제도를 영속화하려는데 우리의 재능을 허비하게 만든다. 신성한 경제는 우리의 일하려는 욕구, 나누려는 욕구를 해방시킬 것이다. 주위를 보면 재능을 나누려는 사람은 많아도 돈이 되지 않아서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들의 재능을 필요로 하는 곳이 없어서가 아니다. 세상에는 해야 할 아름다운 일들이 너무나도 많지만 우리가 아는 지금의 돈은 선물과 필요를 이어주지 못하고 있다.
아주 적은 노동만으로도 생계에 필요한 것들이 쉽게 충족되는 지금 왜 모두가 생계를 위해 이토록 힘들게 일해야 할까? 바로 결핍을 유도하는 돈의 본질 때문이다. 사람들이 일하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가정은 경제학의 뿌리 깊은 가정이며, 더 깊이 들어가면 분리된 자아이야기에 바탕을 두고 있다. 상대방의 이익이 나의 손해이며 상대방의 행복이 나의 행복에 불리하다고 여긴다면, 어떻게 누군가와 나누려는 마음이 들겠는가? 재생산적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생물학의 이기적 유전자는 금전적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경제학의 합리적 행위자와 같다. 가정에 의하면 우리는 뭔가 자신에게 득이 되지 않으면 남에게 득이 되는 일을 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나누려는 욕구 따위는 없다. 우리는 강요에 의해 나누거나 돈을 받고 나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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