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탐욕이란 무엇일까
실제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어마어마한 양의 음식과 에너지와 물자가 낭비되는 근본적으로 풍족한 세계이기 때문이다. 세계의 절반이 나머지 절반을 먹여 살릴 만큼의 음식을 쓰레기로 버리는 동안 나머지 절반은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리고 있다. 제3세계와 빈민가 사람들은 의식주도 해결할 형편이 안 되는데 우리는 전쟁에 플라스틱 잡동사니에 인간의 행복에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수많은 제품 생산에 막대한 자원을 쏟아붓고 있다. 빈곤이 생산 능력 부족으로 인한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남을 도우려는 의지가 부족해 생기는 것도 아니다. 가난한 이들을 먹여 살리고 자연을 회복시키는 등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지만, 다들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실천하지 못한다. 돈은 선물과 필요를 전혀 이어주지 못하고 있다. 왜 그럴까?
나는 여러 해 동안 그 이유가 '탐욕' 때문이라는 상투적 견해를 갖고 있었다. 노동착취형 공장들은 왜 임금을 최저 수준으로 낮추려고 할까? 탐욕 때문이다. 왜 사람들은 연료 소모가 많은 SUV를 살까? 탐욕 때문이다. 왜 제약회사들은 연구결과를 뒤에 감추고 약의 위험성을 알면서도 판매할까? 탐욕 때문이다. 왜 열대어 공급자들은 산호초에 폭약을 터뜨릴까? 왜 공장들은 유독성 폐기물을 강에다 버릴까? 왜 기업 사냥꾼들은 직원들의 연금까지 약탈할까? 오직 탐욕 때문이다.
2. 탐욕과 결핍의 상관관계
탐욕이 실제 결핍이 아닌 '인식'을 반영한다는 것은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보다 더 인색한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보면 알 수 있다. 내 개인적 경험에 비춰보더라도 가난한 사람들끼리 적은 돈이나마 서로 베풀고 빌려주는 일이 더 많다. 이런 관찰을 폭넓게 뒷받침해 주는 연구결과도 있다. 비영리 연구단체인 독립섹터의 2002년 조사에 의하면 소득 2만 5천 달러 이하의 미국인들이 소득의 4.2퍼센트를 기부하는 데 비해 소득 10만 달러 이상은 2.7퍼센트를 기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UC버클리의 사회심리학자인 폴 피프가 최근 실시한 조사에서는 저소득층이 고소득층에 비해 더 관대하고 더 많이 베풀며 남을 더 믿고 돕는 것으로 나타났다. 피프는 피험자들에게 돈을 주고 자신과 익명의 파트너에게 배분하게 하는 실험을 통해 관대함과 사회경제적 지위가 역의 상관관계를 보이는 것을 밝혀냈다.
이런 결과를 두고 탐욕스러운 사람들이 부자가 된다는 결론을 내릴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부가 사람을 탐욕스럽게 만든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왜 그럴까? 풍족함의 맥락에서 탐욕은 어리석으며 오직 결핍의 맥락에서만 타당한데 말이다. 부자들이 부족한 것 하나 없이도 결핍을 인식하고 다른 누구보다 돈 걱정을 많이 한다면, 돈 그 자체가 결핍 의식을 유발하는 게 아닐까? 안정과 거의 같은 의미를 같은 돈이 아이러니하게도 그 반대의 것을 가져다주는 게 아닐까? 둘 다 맞다. 개인적 차원에서 보면 부자들은 돈을 벌고자 더 많은 투자를 해왔기에 손에 쥔 돈을 내놓기가 더 어렵다. 구조적 차원에서도 처음부터 결핍이 돈에 내재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결핍은 돈이 만들어지고 순환되는 방식에서 비롯된 직접적인 결과이다.
3. 우리는 결핍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물질세계가 근본적으로 풍요로운 세계라면 영적 세계는 더욱 풍요로운 세계이다. 인간의 정신이 창조해 낸 노래, 이야기, 영화, 사상 등 지적 재산이라고 이름 붙인 모든 것들 보아야 한다. 지금 같은 디지털 시대에서는 사실상 공짜로 그런 것들을 복제 및 유포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돈으로 평가되는 영역에 묶어두려면 인위적 결핍을 부여해야만 한다. 산업계와 정부는 저작권, 특허권, 암호화 표준 등을 통해 결핍을 강제 부여함으로써 지적 재산의 소유자가 이익을 얻을 수 있게 만든다.
이처럼 결핍은 대부분 환상이며 문화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거의 전부가 문화적으로 만들어진 세계에 사는 우리는 결핍을 진짜처럼 받아들인다. 10억 가까운 인구가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날마다 5천 명가량의 아동이 기아와 관련돼 죽어갈 만큼 진짜 같은 결핍 말이다. 따라서 결핍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 즉 불안과 탐욕은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는다. 무언가가 풍족하다면 나누기를 주저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는 본래 풍족하지만 우리의 인식과 문화, 보이지 않는 이야기들을 통해 다르게 만들어진 세계에 살고 있다. 우리의 결핍의식은 자기 충족 예언이며 결핍이라는 환상을 구체적 현실로 만드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돈이다. 돈은 풍요를 결핍으로 바꾸면서 탐욕을 낳는다. 돈 그 자체가 아니라 수천 년간 우리의 문화적 자아의식, 무의식적 신화, 자연과의 대립적 관계를 구현해 온 지금의 돈 말이다. 이제 이 모든 것이 변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돈이 우리의 정신과 태도에 악영향을 미치게 되었는지 살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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